지금 생긴 일은 언젠가 있었던 일이다

by 아가테 블루메 : 베를린을 베이스로 활동하는 프리랜서 작가이다. 최근 기고지로 Un:zine이나 Resident Advisor가 있다.

조연은 무작위로 검색한 이미지와 인공지능으로 생성한 인물 사진으로 이루어진 작품에서, <하멜 표류기>에 대한 참조를 담아 관객을 가상의 목적지로의 여정에 초대함으로써 외국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경이로움과 무력감을 동시에 불어넣는다.


<하멜 표류기>는 네덜란드인 회계 장부 관리인 헨드릭 하멜이 1653년 조선에 표류하고 13년간 억류되어 살았던 경험을 자세히 담은 책이다. 그는 조선에 억류되어 산 기간동안 현지인들 사이에서 비교적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었는데, 덕분에 백인 남성으로서 경험한 17세기 조선의 자세한 사회상을—경이와 무력감을 동시에 담아—기록할 수 있었다.


조연은 그저 존재하는것 만으로도 이해 받는 것이 아닌, 새로운 언어와 문화를 배워야만 생존할 수 있는 21세기 유럽에서 한국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자신의 경험과 하멜의 경험을 평행선상에 놓는데, 특히 환대와 억압을 동시에 받는 양가성에 주목한다. 따라서, 양가성은 작품의 주요한 모티브가 되어 역설적인 실제와 가상의 관습을 반복적으로 병렬하는데, 인종차별이 잘못되었다는 상식이 있으면서도 인종차별을 하는 사회, 뿌리 깊은 육식 중심의 사회이지만 채식주의자가 많은 사회, 금발 여성을 사랑하면서도 혐오하는 사회 등이 작품서 제시된 예시들이다.


작품의 또 다른 주요 모티프는 타자화되는 감정, 즉 소속되지 못하고 차별의 논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감정이다. 작가는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갔을 때 느꼈던, 또한 독일에서 외국인, 동양인, 그리고 여성으로 살아가며 느끼는 표류감을 시각적 서사로 옮기며 그녀 자신이 외국인인지 억류자인지를 자문한다. 또한, 관객으로 하여금 타자감을 느끼도록 하는 과정에서, 그녀는 하멜이 조선을 묘사하며 썼던, 그리고 21세기에도 여전히 억압적으로 존재하는, 유럽중심적인 제국주의적 언어를 풍자적으로 사용한다.


조연의 작품은 파노라마 사진과 가상의 일기를 조합하여 미지로의 여정의 서사를 따라가게끔 한다. 여러 장의 사진들이 서로 녹아들며, 콜라주된 오브제들에는 뚜렷한 경계가 없다. 텍스트는 파노라마 사진에 몽타주되어 여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가상의 인물들, 메시지들, 그리고 사건들을 기록한다.

still cut from 'what has been...' stranger from party teaches how ramen cooked. '지금 생긴 일은...'의 갈무리, 파티에서 만난 낯선 사람이 나에게 라면 끓이는 법을 가르치려 하고있다.

<지금 생긴 일은 언젠가 있었던 일이다> 의 영상 갈무리. 파티에서 만난 낯선 이가 나에게 라면 끓이는 법을 가르치려 하고있다.

<지금 생긴 일은 언젠가 있었던 일이다>, 무성 흑백 비디오, 00:43:35,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