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주인이 되어, 질문의 공백을 채우는 시간
(…) 진실을 알 수 없을 때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모든 이야기가 다 부분적으로 진실이라고 믿는 것이다. 어떤 사건은 사건이 발생된 원인을 알 수 없거나 그 원인이 납득되지 않는 채로, 혹은 사건에 대해 충분히 질문되지 않은 채로 종결된다. 이런 사건들은 당사자에게 커다란 공백으로 남게 된다. 당사자는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 공백을 채우기 위해 사건의 주변을 맴돌 수밖에 없다. 그는 그렇게 공백의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파편처럼 굴러다니는 이야기를 모아, 부분적인 진실의 덩어리에 살을 덧입히는 사람이 된다. 《passiert . . .》에서 조연은 이야기의 파편들을 통해 순백의 명료한 진실이 아닌, 서로 덕지덕지 엉겨 붙은 불완전하고 사적인 진실을 내놓는다. 그는 초등학생 때 집 근처에서 불이 났었던 일을 최근까지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에게 화재 장면은 붉은색과 뜨거운 온도, 창문의 덜컹거리는 소리와 진동으로 생생하게 남아 있다. 하지만 선명한 그의 기억과는 달리, 뒤늦게 찾아본 사건에 대한 기록은 몇 줄의 기사가 전부였고, 아무도 화재의 정확한 원인을 알지 못했으며, 주변인들이 주장하는 화재의 원인은 서로 완전히 무관하거나 완전히 모순됐다. 사적인 진실은 침묵 속에서 증발되었고, 공적인 허구는 몇 줄 기사에 담긴 매끄러운 언어로 각인되었다.
기억에는 주인이 있다. 기억은 ‘기억하기’를 수행하는 주체 없이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사건은 누군가에게 선명하게 기억되는 사건임에도, 더 이상 질문할 필요 없는 과거 혹은 없었던 일처럼 여겨진다. 사건을 기억하고 질문하는 이의 마음이 계속해서 부정될 때, 과거를 다시 마주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이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작가는 이번 전시에 연계된 워크숍에서, 기억의 주인이 자신의 방식으로 기억을 조형할 수 있도록 하는 시간을 만들었다. 워크숍 참여자는 자신의 과거와 관련된 단어를 가지고 글을 쓴 후, 글을 쓴 종이를 물에 불려 해체시키고, 다시 뭉쳐 덩어리로 만든다. 작가 역시 이와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지난 3~4년간의 일기에서 추출한 과거에 대한 기록을 물질적 덩어리로 재구성했다. 이들은 사적인 단어에서 출발하여 기억을 풀어내고, 그 기억을 손안에서 해체했다가 재구성한다. 분해되었다가 재구성된 덩어리는 그것을 채우는 글자가 흩어지면서 언어적으로는 불완전해졌을지라도, 물리적인 조형의 과정을 거치면서 기억하는 것조차 부정되었던 마음을 채우기에 충분한 모양을 가지게 된다.
전시의 제목인 ‘파시어트(passiert)’는 영어로 ‘happened’를 의미하는 독일어 표현이다. 일상에서 사용되는 파시어트는 ‘이미 지나간 일이다, 그러니 어쩔 수 없다.’라는 수동적인 태도를 담고 있다. 한편으로, 토마토 퓨레를 지칭하는 ‘가공된 토마토(passierte tomaten)’에서 사용되는 파시어트에는 그 대상을 가공하는 주체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 가공하는 주체는 그 과정에서 책임을 삭제할 수도 있지만, 그 대상에 감춰져 있던 무언가를 드러낼 수도 있다. 조연은 파시어트가 가지고 있는 과거에 대한 두 가지 태도를 동시에 의식한다. ‘그 사건’은 이미 지나갔으니 과거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사건’은 뒤늦게라도 기억의 주인에 의해 재구성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파시어트라는 단어가 두 가지 의미 사이에서 화자의 태도를 수시로 바꾸듯, 과거는 지금도 타협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 두 입장 앞에 놓여 있다(…)